○ 춘양골이야기

내 고향 春陽을 알아봅시다.

민들레@ 2006. 8. 29. 14:21

<奉化郡> 春陽面 棲碧,西碧二里/法田面 於旨一里 鹿洞:華獐洞 노루골/明湖面 刀川二里 神劍:新錦 신기미.觀漲二里.北谷里


□ 봉화군(奉化郡) 춘양면(春陽面) 서벽2리: 서벽.새벽 <舊>춘양현(春陽縣)

▷ 봉화군 연혁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기저국에 속하였으며, 삼국시대에 현재의 봉성면 일대가 고구려의 내기군 고사마현에 속하였다. 신라5대 파사왕(80~112)때에 신라 영토에 속하였고, 신라 35대 경덕왕(742~765)때 내령군 옥마현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8대 현종(1010~1031)때 봉성현으로 개칭, 조선26대 고종 32년(1895)에 봉화현을 봉화군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순종1년(1907)에 군청사를 봉성에서 춘양으로 옮겼으며,1914년 군청을 춘양에서 내성(현위치)으로 옮기고 15개면을 9개면으로 개칭하였다. 1962년 춘양면 덕구리와 천평리를 강원도 영월군에 편입, 1973년 상운면 두월리와 내림리를 영주군에 편입하였으며, 1979년 봉화면을 봉화읍으로 승격하고, 1983년 소천면 석포 출장소를 석포면 (8개리)으로 승격 1읍, 9면, 156리로 현재에 이름.

▷ 춘양면 연혁
신라시대 - 복주목(안동부) 가야향, 소라부곡, 계단부곡
고려 충렬왕10년(1284년) - 福州牧 屬縣으로 春陽縣으로 승격
조선시대 - 안동부 춘양현
조선 고종43년(1906년) - 봉화군 중춘양면
일제시대(1914년) - 봉화군 춘양면
1962년 덕구리, 천평리가 영월군에 편입
1973년 법전면 소로리가 춘양면에 편입

▷ 춘양의 풍수
이중환은‘택리지’에서 이른바 이백(二白)의 남쪽 땅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이백이란 소백과 태백산을 말한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본다. “예안·안동·순흥·영천(=영주)·예천 등 고을은 이백의 남쪽에 위치했는데 여기가 신(神)이 알려준 복된 지역이다.”

서울에서 영남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이들 고을에 대한 이같은 찬사는 결코 허사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이 배출한 인물이나 지역경제의 흐름이 이를 웅변해 주기 때문이다. 이들 고을 중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안동에서 북으로 2백리 떨어진 곳에 춘양면이 있다. 이곳을 두고 이중환은 “깊은 두메이고 두메 백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했다. 그들의 생업은 “관동 연안지방에서 생산되는 생선과 소금이 이 마을을 통해 유통되고 그 이익으로 산다”고 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조선조가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태백산 아래 이곳 각화사에 사고(史庫)를 지은 것만 보아도 춘양이 지닌 지리적 여건을 짐작할 수 있다.
춘양은 태백산이 소백산으로 건너가는 과협처(기를 모으는 곳)에 도래기재를 만들면서 남향받이로 생긴 마을이다. 지금은 영동선 기차가 면소재지를 지나고 한 여름 피서객이 몰려드는 불영계곡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를 끼고 있어 벽지라는 인상은 많이 가셨다.
그럼에도 여전히 춘양은 새색시처럼 얼굴을 숨기고 있다. 특히 마을 어구이자 면을 관통하는 운곡천의 수구(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삼척봉이란 둥근 산이 마을을 가리고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돼 있다.

춘양면이 우리의 관심을 끈 또다른 이유는 이른바 십승지라는 점이다. ‘정감록’은 물론 여타 비결서도 난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춘양을 반드시 꼽고 있다. 춘양을 두고‘소라고기(召羅古基)’라 했고 이는 옛 부족국가 시절에 이미 이곳에 소라국이라는 독립된 나라가 있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춘양면 일대가 외부의 도움없이 자생할 수 있는 지역임을 말해 준다. 또 전란(戰亂)을 피하기 좋다는 것은 임진왜란 때 서울의 사대부들과 서애 유성룡의 형 되는 유운룡이 어머니를 모시고 피란(避亂)한 점에서도 확인된다.

춘양면은 3개 지구로 나눌 수 있다. 강원도와 접경지역인 서벽리 일대와 중간 마을격인 도심리 그리고 현재 면사무소가 있는 의양리가 그것이다. 이들 3개 지역은 모두 외부와 차단된 듯한 지리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 서벽2리(棲碧,西碧里) 유래

▷ 서벽, 새벽
서벽리의 중심마을이며 북족에는 태백산, 동쪽에는 시루봉, 서쪽에는 옥돌봉, 남쪽에는 문수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천하대지로서 서쪽 옥돌봉에서 아침햇살에 옥돌이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비춘다고 하여 서벽리라 부르고 있다. 마을은 풍수지리학상 배(주)의 형국이이며 마을 뒤 주령이 지네형이러서 우물을 파거나 뒷산에 묘지를 쓰는 것을 금해 왔다.
예로부터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고 진성이씨(眞城李氏) 참판(參判)의 후손들이 문중을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근세에는 국회의원으로 자유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정문흠(제2대∼제4대)씨도 이마을 출신이다. 정문흠 의원은 당시 혼탁한 정치상황에서도 청빈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봉화군의 대표적 수리시설인 창평저수지와 금봉저수지를 축조를 국책사업에 반영하여 창평, 동양, 유곡들의 가뭄 걱정이 없도록 하여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노고를 기리는 사람들이 많다.

금당골 : 서벽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이곳에 큰 절이 있었는데 그 절 이름에 따라 금당골이라고 하였다고 하며, 미상년대에 소실되고 현재 주춧돌등 석재 일부만 남아있고 구사찰 아래 약 2.5km 지점에 금륭사라는 암자가 현존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 금이 많이 난다고 하여 금당골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으며 약 1960년대까지 금광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광되었다.

구룡곡, 구룡배미 : 금당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구룡곡, 구룡배미 라고 한다.

성지바위골 : 넓이가 약3평 정도 되는 넓직한 바위가 있으며 옛날에 선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춤추고 놀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 바위 밑에는 약수가 사철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벽초정사 : 정문흠씨가 국회의원 재직시 자기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로서 정자앞에 연못이 있었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매몰되고 현재는 정자만 남아있다.

▷ 구봉곡, 굽은골, 구분골
마을 뒷산 구봉산이 9개의 봉우리로서 그 구봉산아래 마을이라고 하여 구봉곡, 구분골이라 부르고 있다.

신재, 신재물 : 마을 서쪽 약 2km에 위치한 나지막한 고개로서 옛날에 신부가 초례를 치른후 신행길에 가마꾼의 부주의로 신부가 굴러 떨어져 죽었다고 하며 그 후 이곳을 신재 또는 신재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재당골 : 마을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예로부터 숲이 우거지고 산새들이 많이 서식하여 조잘데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도래기, 도역
서벽 서북쪽 약 1.5km쯤되는 마을로서 경상도와 강원도를 연결하는 역이 있던 마을이라고 도역이, 도래기로 부르게 되었다. 이 일대가 과거에는 큰 효용이 없는 농토였으나 지금은 사과 재배기술이 도입되면서 사과농사로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많다.

도래기재, 도역령 : 마을 뒤쪽 강원도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많은 문물이 경상도와 강원도간에 교류되었으며 1950년대까지 상동 중석광업소와 금정금광이 융성하여 광산물과 임산물을 운반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도래기터널, 도역터널 : 광산물과 임산물의 유통과 강원도로의 교통을 위하여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개설한 석조터널(약150m)로서 붕괴위험이 많아 1985년경부터 터널위로 도로를 개설한 후 폐쇄하였다. 지금은 터널 입구에 소공원과 정자 등 쉼터가 조성되어 여름철이면 많은 행락객들이 쉬어가고 있으며, 터널에서 부는 바람은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 봉화군(奉化郡) 법전면(法田面) 법전1리: 버제이.버지이.법전(法田,法典)

▷ 법전면 연혁
조선시대 순흥부 와단면과 안동군 중춘양면에 편입
1914년 부군(府郡) 폐합시 법전면으로 개칭되었음.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로리가 춘양면에 편입
현재 법정리는 법전(法田), 풍정(楓井), 척곡(尺谷), 소지(小池), 소천(召川), 눌산(訥山), 어지(於旨) 7개리로 되어있음.

▷ 법전면 유래
옛날 이곳에 법흥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앞에 큰 밭이 있었다. 그 밭에 마을이 생겼다고 해서 法田(법전)이라 하며, 또는 法典(법전)이라고도 한다. 법전에는晉州姜氏(진주강씨)가 많이 살고있는 집성촌 마을이다. 버전이라는 명칭도 있는데 법전리에서 3백 수십년간 세거하는 진주강씨네를 버전이 강씨라하여 버전이라고도 한다.
법전리에는 법전면의 중심소재지로서 봉화읍과 소천,현동을 연결하는 국도 36번이 통과하며 폭 5,6m의 하천이 소재지의 남향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행정기관, 학교등이 집중된 지역이다.


□ 법전면(法田面) 어지1리(於旨里) 유래

▷ 녹동(鹿洞).노룻골 <舊>춘양현 장현촌 화장동(春陽縣 獐峴村 華獐洞)
어르말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고려시대 春陽縣 獐峴村에 속하였던 것을 1723年 懶隱(나은) 李東標(이동표) 선생의 2자인 察訪(찰방)을 역임한 李濟兼(이제겸)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華獐洞을 주자의 白鹿洞天(백록동천)이란 문장을 따서 녹동으로 개칭하였고 지금은 그 후손인 眞城李氏(진성이씨) 문중이 많이 살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마을 북쪽에 산 양호와 남쪽에 산 음호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세이고 범의 양식이 노루이므로 노루골이라 전해온다.
춘양에서 소천방면으로 36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에는 마을 2km전방 암벽에 백록동천이란 암각이 새겨져 있었다하나 도로 개설로 손실되고 없다.

▷ 목비골
노룻골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 마을로서 임진왜란 때 柳宗介(류종개)장수가 왜군들의 목을 벤 골짜기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각 성씨 서너집이 산비탈 밭과 논농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본 마을 앞에는 36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영동선을 연결하는 녹동역이 자리잡고 있어 눌산 지역과 소천리 주민들의 교통중심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녹동역을 주위로 200여년 묵은 느티나무 2그루가 서 있고 여름이면 인근 농가에서 법전 복수박을 생산 판매할 수 있는 원두막 시설이 함께 어우러져 지나가는 여행객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 새마을
노루재 주변 골짜기에 화전민이 산재하여 있었으나, 해방후 빨치산이 양민을 학살하고 강제징용하여 국민을 불안하게 하여 정부에서 노루재 주변의 주민을 골짜기에 정착하도록 집 3채에 5가구 13명이 이곳에 이주해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로 지명되고 있다.


□ 법전면(法田面) 어지2리(於旨里) 유래: 어름말,어지(於旨),어로동(魚老洞),어동(魚洞)

▷ 어름말,어지(於旨),어로동(魚老洞),어동(魚洞)
1606년경 영양남씨가 개척하여 노모(老母)에게 항상 물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 하여 어로동(魚老洞)으로 불리운다.

▷ 맛질,미곡리(味谷里),마질리(馬叱里)
어르말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서 조선시대 때 울진에서 춘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주막이 있었는데 행인들로부터 음식맛이 좋다하여 맛질, 미곡(味谷)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 봉화군(奉化郡) 명호면(明湖面) 도천2리(刀川二里).관창2리(觀漲二里).북곡리(北谷里)

▷명호면 연혁
고 대 : 고사마현과 옥마현에 속함
1906년 : 고종43년 봉화군 상남면으로 개칭
1914년 : 동면, 남면, 하남면, 임지면을 合하여 명호면으로 개칭
1983년 : 신라리를 상운면에 편입, 17개 이동으로 됨
군의 동부에 위치하며 낙동강과 운곡천이 만나는 지역으로 산수가 수려한 고장임.

▷명호면 유래
오늘의 명호면은 고계, 북곡리를 제외한 낙동강 서편의 지역은 매토부곡과 미량곡부곡으로 내려오다가 옥마현과 봉성현에 속해 있었다.
면의 명칭을 명호라 부르게 된 것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때 명호면 소재지인 도천리에서 낙동강과 운곡천이 합류하여 수량도 불고 강물이 수정과 같이 맑고 깨끗한 호수와 같다고 아름다움을 찬미하여 명호(明湖)라 명명하게 되었다.이 때에 강동의 재산면 고계,북곡리를 명호면에 편입시켰다.

□ 도천2리 유래
신금(新錦).신기미.신검(神劍)
약 200여년 전 眞城李氏(진성이씨)가 개척하였으며 '寶劍茂匣(보검무갑)이라는 명산터가 있다고 하여 神劍(신검)이라 부르다가 근세에 와서 가옥을 다시 신축하는 등 마을을 새로 만들었다 하여 新錦(신금)이라 부른다.




                                                  2006年 8月26日

                                               蔚山에서 博菴 李 庸 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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