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양골이야기

봉화옥류암

민들레@ 2011. 6. 29. 20:14

奉化玉溜庵 (봉화옥류암)

2011년 06월 19일(일) 13:19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번지 띠띠미 마을에 있으며, 2007년 12월31일 경북문화재자료 531호로 지정되었다.

정자는 1637년에 건립하여 1756년에 와가(瓦家)로 중건한 후 미수 허목(眉? 許穆)의 전액 현판과 태산 이상정(大山 李象靖)의 기문을 걸었다고 하며 1876년에 다시 중수 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며 정자의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는데 전면 우측에는 사주문을 세워 정자로 출입케 하였으며, 정자의 우측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주사를 최근에 중건하였다.
옥류암은 건축적 특성과 아울러 전면에 조성한 3개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시문(詩文)에 연과 구기자, 국화, 소나무, 매화, 대나무를 심은 기록 등은 조선시대 조원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태백오현으로 추앙받은 당대의 학자들과 함께 교류하였던 역사적 장소성 으로서의 가치가 있어 文化財資料로 지정되었다.

정자를 건립한 두곡 홍우정(1595~1656)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국왕이 오랑캐에게 수모를 당하자 척화의 뜻을 품고 서울을 떠나태백산령 문수산(文殊山:1,206m) 아래에 낙향, 은거할 때 세운 정자이다.

두곡선생은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후배들을 양성했다. 홍우정(洪宇定) 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정이(靜而), 호는 두곡(杜谷) 이다.

홍우정은 형조판서 만전당 홍가신(晩全堂 ,1541~1615)의 손자이며, 한성서윤(漢城庶尹) 홍영(洪榮)의 아들이며 이조판서 홍우원(洪宇遠 )과 청백리 홍우량(洪宇亮 )의 형이다.

두곡선생은 161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학이 뛰어나 대신의 천거로 왕자사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그뒤 직장ㆍ공조좌랑 등의 벼슬이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다.중앙 정치무대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안에 학문적 기반을 갖추었는데도 인조의 삼전도 치욕 후 부끄러움을 느낀 홍우정은 절의를 지키며 한양에서 산간벽지 봉화로 은둔했다.

이후 그는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인조 11년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잠깐 나아간 것이 벼슬살이의 전부였다.

그러나 사후인 영조 22년, 이조판서 원경하(元景夏, 1698~1761)가 경연에서 선생의 절의를 아뢰자 영조는 칭찬하며 곧바로 추증을 명했다. 그 결과 이조참의로 추증되고 국왕이 직접 ‘숭정처사’라는 칭호를 내렸다. 1816년(순조 16) 다시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이듬해에 개절공(介節公)이란 시호까지 받아 구봉사(九峯祠)와 문산사(文山祠)에 봉안되었다.

두곡 은 ,손우당 홍석(洪錫,1604~1680),포옹 정양(鄭瀁,1600~1668), 잠은 강흡(姜恰,1602~1671),각금당 심장세(沈長世, 1594~1660)와 더불어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추앙받고 있다.

ⓒ 봉화일보 인터넷뉴스

옥류암 현판은 미수 허목의 글씨로 가로120cm, 세로 60cm나 되는 대작으로 도난당했다가 회수한후 지금은 안동의 국학진흥원에 보관되어 있다.

봉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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