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만 먹고 가면 섭섭하죠! 솔 숲도 둘러보세요
경북 봉화에서 달랑 송이만 먹고 올라온다면 아쉽다. 보고 먹고 즐길거리가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최고를 골랐다. ‘봉화 베스트 5’를 소개한다.
한약우
‘거세육’은 숫놈으로 태어났지만 생식기를 도려내는 아픔을 겪으며 암소와 비슷해진 ‘거세소’ 고기다. 한우 암소보다 거세육이 더 낫다는 고기 마니아들이 많다. “고기 육질이나 마블링, 육색이 암소보다 우수하면서 숫소 특유의 누린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거세육은 맛이 싱겁다. ‘봉화 한약우’는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됐다. 송아지 때부터 24개월이 될 때까지 천궁, 당귀 등 한약재 60㎏을 거세소에게 먹인다. 이렇게 키운 한약우는 “누린내가 나지 않고 육질이 연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보완된다”는 게 봉화한약우영농조합의 설명. 조합에서 축산기술연구소에 의뢰한 성분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약우는 고기 맛을 좌우하는 올레인산 함량이 전체 지방산 중 70.7%로 일반 한우(48.7%)나 수입쇠고기(38.3%), 젖소(36.5%)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맛을 확인하고 싶다면 봉화군청에서 멀지 않은 ‘봉화한약우본점 식육식당’(054-672-1091)으로 간다. 한약우는 아직 생산량이 적어 봉화 바깥에서 맛보기 힘들다. 식당에 들어가니 벽에 하얀 철판이 걸려 있다. ‘오늘의 한약우’란 제목 아래 생산자와 생산지, 연락처 등이 적혀 있다. 그날그날 판매하는 고기를 누가 생산했는지 안심하고 먹으란 뜻같다.
‘생등심’을 주문했다. 150g에 1만4000원. 서울 고깃집과 비교하면 매우 ‘착한’ 가격이다. 노르스름한 기름이 거미줄처럼 얽힌 고기를 벌겋게 달궈진 숯불 위에 얹었다. 물방울이 표면에 송글송글 맺혔을 때 고기를 한 번 뒤집어 한 입 크기로 잘랐다. 고기를 씹자 육즙이 흠뻑 배 나온다. 구수함이랄까 감칠맛이랄까, 하여튼 평소 먹던 쇠고기보다 맛이 짙다. 가격 대비 만족도는 압도적이다.
‘갈비살’ 1만6000원, ‘왕소금구이’ 1만원. 모두 150g 기준이다. 1인분 200g씩 나오는 ‘불고기’는 9000원, ‘주물럭’ 5000원, ‘곱창전골’ 2만원, ‘삼겹살’ 6000원이다. 송이철에는 ‘산송이돌판’(1만9000원)도 있다.
봉화유기
봉화는 옛부터 ‘방짜유기(鍮器)’로 유명했다. 방짜유기란 구리 78%와 주석 22%를 섞은 합금으로 만든 그릇 등을 말한다. 봉화읍 삼계리에서 ‘내성유기공방’을 운영하는 김선익(70)씨는 “봉화는 숲이 좋아서 유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숯을 다량으로 구하기 쉬웠고, 그래서 유기가 발달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해방 즈음 30여곳에 달하던 봉화의 유기공방은 이제 ‘내성유기공방’과 바로 옆 고해룡씨가 운영하는 ‘봉화유기’, 이렇게 두 곳만 남았다. 값싸고 건사하기 편한 스테인리스 그릇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기공방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었다. “해방 후 그릇이 없어서 유기가 잘 팔렸어요. 공방들이 품질 나쁜 유기를 막 만들어냈어요. 그러다보니 유기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어요.”
사라질 뻔했던 방짜유기가 30여년 만에 돌아오고 있다. 웰빙 바람 덕분이다. 방짜유기는 살균효과가 있다고 한다. 병원성 대장균을 방짜 그릇에 넣고 24시간이 지나자 뿌연 침전물이 생겼다. 대장균이 죽어 생긴 흔적이었다. 농약 성분도 가려낸다. 농약 묻은 깻잎을 방짜그릇에 담아뒀더니 그릇 표면이 시커멓게 변했다.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방짜그릇과 숟갈, 젓가락을 주문하는 식당들도 늘었다. 김선익씨는 “매출이 해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방짜유기 가격도 많이 올랐다. 되찾은 인기보다는 최근 2배 가까이 급등한 구리 국제시세 때문이라고 한다. 봉화읍에 오면 제대로 만든 방짜유기를 조금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내성유기공방에서는 식기, 찬그릇 등 17점(23피스)으로 구성된 2인용 ‘생활반상기’를 37만원에 판다. 시중이나 인터넷에서 46만2000원에 판매하는 제품이다. 소매가 9만원인 ‘연엽식기’(밥공기와 국그릇으로 구성된 남성용 식기세트)는 7만2000원, 9만3000원인 ‘합식기’(여성용)는 7만5000원에 판다. 내성유기공방 (054)673-4836 www.naesung.co.kr, 봉화유기 (054)673-1987 www.yougijang.com
닭실한과
봉화읍 삼계리 ‘닭실마을’은 조선 중종 때 문신 권벌이 터를 닦은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닭이 알을 품은 모양인 닭실은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명당터로 옛날부터 이름을 날렸다.
요즘 닭실마을은 한과로 더 유명하다. 안동 권씨 집안의 까다로운 제사가 닭실한과의 시작이었다. 종부인 손숙(61)씨는 “제사상에 오르는 한과는 가문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삼을 만큼 중요시했고, 자연 한과 만드는 기술이 좋아졌다”고 했다.
닭실마을 입구에는 부녀회관이 있다. 부녀회관에 가면 한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찹쌀을 빻아 시루에 쪄낸 뒤 홍두깨로 밀어 손바닥만한 떡살을 만들어 온돌 바닥에 바싹 말린다. 떡살을 식용유에 넣고 나무주걱으로 눌러 지진다. 손바닥만하던 떡살이 방석만하게 부풀어오른다. 물엿을 바르고 튀밥을 묻히면 한과의 한 가지인 입과(산자)가 만들어진다. 일주일쯤 걸린다. 모두 수작업이다.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잔과(손가락 크기 강정)는 찹쌀 튀밥과 잘게 자른 건포도로 꽃 장식까지 한다. 속이 촘촘하면서 입안에서 녹듯 부드럽다. 딱딱한 덩어리가 씹히지 않는다. 손숙씨는 “미지근한 기름에서 천천히 튀기는 정성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일러줬다.
추석은 주문이 전국에서 쏟아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요즘 한과 만드는 아낙들 손길이 유난히 바쁘다. 바구니 크기에 따라 3만5000원, 6만원, 8만원에 판매된다. 제사, 선물용 등을 알려주면 맞춰서 포장해 택배로 보내준다. 택배비 4000원. 10일 전 미리 주문해야 좋다. 닭실마을 부녀회 (054)673-9541, 674~0788
서벽리 금강소나무숲
하늘로 쭉쭉 뻗은 잘생긴 소나무숲, 솔잎을 스치며 푸르게 물든 햇볕, 신선한 공기. 거기 인간이라곤 나 외에 아무도 없다.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금강소나무숲’은 고요하고 평온한 자연을 즐기고픈 그대에게 딱 알맞은 곳이다.
금강송은 줄기가 곧고 재질이 단단해 1등급 목재로 사랑받아왔다. 동해안을 따라 여러 지역에서 자라지만, 춘양면에 특히 많아 나무는 ‘춘양송’, 목재는 ‘춘양목’이라 불린다.
서벽리 금강소나무숲은 1974년 채종림으로 지정된 이후, 이곳에서 키운 종자로 금강송 묘목을 키워 전국 산에 심었다. 전국 금강소나무의 산실인 셈이다. 2001년부터 궁궐이나 사찰 등 문화재 보수복원을 위한 ‘문화재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되면서 나라로부터 특별 관리를 받으며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돼 왔다. 그러다 지난 7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숲에는 금강소나무 외에는 다른 큰 나무가 없다. 금강소나무가 잘 자라도록 국유림관리소에서 간벌작업을 한다. 대신 금강소나무 아래 산옥잠화, 산수국, 동자꽃 등 다양한 야생화가 자란다. 일반 공개된 지 얼마되지 않아 사람도 없다. 커다란 ‘비밀 정원’ 같다.
국유립관리소에서는 ‘숲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화로 미리 예약하면 ‘숲 해설가’가 오전 10시~정오, 오후 2시~4시 2차례 금강소나무숲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설명해준다. 길이 2.6㎞ 산책로를 천천히 따라 걸으면 40분쯤 걸린다. 문의 영주국유림관리소 (054)633-7278. 숲 해설가 김재일씨(011-812-3936)에게 직접 예약해도 된다.
입장료는 없다. 주차장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춘양삼거리에서 88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서벽파출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계속 올라간다. ‘두내약수탕’이라는 팻말 부근 샛길로 다시 좌회전해 조금 들어가면 금강소나무숲이 나타난다.
만산고택(晩山古宅)
금강소나무숲에서 산림욕을 즐겼다면 ‘만산고택’에 들러보자. 금강소나무를 다듬은 목재, 즉 ‘춘양목’ 나뭇결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당당한 한옥집이다. 1879년 만산(晩山) 강용(姜鎔·1846~1934)이 지은 집으로, 춘양면 의양리 남쪽 얕은 산을 등지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와 안채가 ‘口’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당 왼쪽으로 2칸짜리 ‘서실’(書室)이 보인다.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는 글씨는 영친왕이 썼다고 한다. 진주 강씨 만산고택 주손이자 봉화문화유산해설사인 강백기(61)씨는 “대원군이 쓴 ‘만산’(晩山)이란 편액을 몇 해 전 도둑이 떼어갔다”며 아쉬워했다.
마당 오른쪽으로 별당인 ‘칠유헌’(七柳軒)이 있다. 별도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으로 왼쪽에는 광이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과 대청이 연결되어 있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오래된 한옥 대청마루를 보면 목재가 뒤틀어져 삐걱대거나 틈이 벌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칠유헌 대청마루는 처음 지었을 적 모습 그대로인 양 온전하다.
만산고택에서는 ‘고택 체험’을 하고자 하는 관광객에게 칠유헌과 서실을 빌려준다. 건물별로 하룻밤에 1팀씩 숙박 가능하다. 칠유헌은 10명까지 10만원. 10명을 초과하면 1인당 5000원이 추가된다. 온돌방과 대청마루를 죄다 채우면 한 번에 최대 50명까지도 잘 수 있다고 한다. 서실은 하룻밤 5만원이다.
칠유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일어난 아침의 상쾌함, 잊을 수 없다. 문의 (054)672-3206
'○ 자작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흐르는 강불 (0) | 2006.11.22 |
---|---|
겨울사랑 (0) | 2006.11.06 |
천년을 살다간 삶이여 (0) | 2006.11.04 |
팔공산의 가을 (0) | 2006.10.20 |
낙엽 (0) | 2006.10.19 |